길 위에 삶이 있다
‘여정(旅程)’사전적으로는 여행의 과정이나 일정을 의미한다.흔히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삶의 여정이라고 말하곤 한다.이것은 아마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마치 긴 여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파울로 코엘료가 쓴‘순례자’를 읽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이때부터 언젠가 한 번 그 길을 꼭 걸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그렇지만 속으로는‘정말 갈 기회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좋은 인연들의 도움으로 어렵고 힘든 일들을 잘 헤쳐 나왔음을 항상 감사해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부담이 컸던지 마음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다.결국,신체적 변화로 나타나 부정맥이 생기고 불면증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급기야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휘몰아쳤다.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일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애썼지만
1년이나 지나서야 그럴 수 있었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나니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어서 반드시 했어야 한다고 믿었던 많은 과정이 당시와는 다르게 인식되었다.무엇 때문에 그 일들을 해내야 한다고 그토록 애를 태웠을까?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견뎌내야 했을까?더 일찍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을까?이 같은 자책하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우여곡절 끝에 몸 상태는 일정 부분 안정을 찾았지만 무언가 공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동안 준비해 왔던 이런저런 계획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권고가 많았던 만큼 미루어 놓고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그러던 어느 날 버킷리스트만으로 간직하고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로 홀연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 생장피드포(Saint-Jean-Pied-de-Port)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로 향하는800km가 넘는 길은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었다.그러나 그 길을 걷는 나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몸은 단단해지고 마음이 맑아짐을 느꼈다.매일 마주하는 그 길은 하루도 같지 않았다.심지어 같은 길마저 걷는 시간에 따라,날씨에 따라,혼자 걷을 때,함께 걸을 때 모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이뿐 아니라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까지도 매 순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마치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과 내 마음 그리고 몸이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된 듯이 행복하고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가끔은 이렇게 힘든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중세부터 이어져 온 이 길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었던 순례자들의 절실함,모든 것을 버리고 삶의 진실을 찾고 싶어 했던 그런 간절함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었고,내가 걷고 있는 이유도 역시 삶에 대한 분명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싶은 강렬한 내적 욕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걸으면서 오묘하게 다가온 자연의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마주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그때마다 짧은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여정을 마치고 몇 달이 지나서야 글과 사진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도보 순례 당시의 생생한 기억이 살아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자축하기 위한 멋진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그러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또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사랑하는 진우와 지우를 비롯한 가족들,좋은 인연들과 함께 그때의 느낌과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비슷한 느낌의 글들이 있었으나 순간순간 떠오른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기에 부족하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을 걷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있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생각해 보고 하나하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어떤 순간은 슬퍼서 눈물이 났고,어떤 순간은 화가 났으며,또 어떤 순간은 행복하고 감사한 기억들이 분수처럼 솟아났다.그렇게 떠올랐던 변화무쌍한 감정들 중에서 서운함과 원망은 그 순간 그 길에 고이 묻어두었고 산티아고를 떠나 올 때는 오로지 행복하고 감사함만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나는 지금 편안하고 행복하다.
새로운 용기가 생겼으며,물론 잠도 잘 자고 있고 심장 박동도 정상적이다.앞으로 더 성숙하고 행복하게,시절인연(時節因緣)을 따라 서두르지도,욕심내지도 않고,묵묵히 최선을 다해서,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것이다.
마치 하루하루 힘들지만,행복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듯이,그 가운데 나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조금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19. 07
정심재(靜心齋)에서
순례길 발자취
출발 준비생장 피에드포Saint-Jean-Pied-de-Port
도보 첫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2일차 수비리 Zubiri
3일차 팜플로나 Pomplona
4일차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5일차 에스테야 Estella
6일차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
7일차 비아나 Viana
8일차 나바레테 Navarrete
9일차 나헤라 Najera
10일차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11일차 벨로라도 Belorado
12일차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
13일차 부르고스 Burgos
14일차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Hornillos del Camino
15일차 카스트로헤리스 Castrojerz
16일차 프로미스타 Fromista
17일차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Carrion de los conde
18일차 카사디아 데 라 케사 Calzadilla de la Cueza
19일차 사하군 Sahagun
20일차 엘 부르고 라네로 El Burgo Ranero
21일차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Mansilla de las Mulas
22일차 레온 Leon
23일차 산 마르틴 델 카미노 San Martin del camino
24일차 아스토르가 Astorga
25일차 라비날 델 카미노 Rabanal del Camino
26일차 몰리나세카 Molinaseca
27일차 카카벨로스 Cacabelos
28일차 베가 델 발카르세 Vega de Valcarce
29일차 오세브레이로 O’Cebreiro
30일차 트리아카스텔라 Triacastela
31일차 사리아 Sarria
32일차 포르토마린 Portomarin
33일차 팔라스 데 레이 Palas de Rei
34일차 아르수아 Arzúa
35일차 페드로우소 Pedrouzo
36일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그 이후 피니스테레 Finist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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